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림 타타르 (문단 편집) == 역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크림 칸국)] 수세기 동안 이들 크림 타타르의 주요 수입원은 다름 아닌 '''[[노예무역]]'''이었는데 [[크림 칸국]]이 [[오스만 제국]]에게 신종하면서 오스만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생긴 크림 타타르들은 동유럽 일대를 휘저으며 마음껏 노예 사냥을 벌여 잡아온 [[노예]]들을 카파의 노예시장을 통해 종주국인 오스만 제국이나 이탈리아 북부의 부유한 도시들로 팔아치웠다. 크림 칸국에서는 약탈자들에게 군마를 빌려준 후에 약탈자들이 납치한 노예를 이자로 받는 비즈니스가 번성했었다 한다. 밑천을 '투자'하고 배당금을 받는 것.[* 출처: 우크라이나의 역사 / 미하일로 흐루셰우스키 (허승철 역)] [[크림 칸국]]이 러시아한테 멸망할 때까지 약 3세기 동안 수백만 명이 노예로 잡혀갔는데 당시 노예 사냥의 주요 피해 지역이었던 [[우크라이나]]의 경우 연 평균 2만 명이 노예로 잡혀갔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비옥한 [[드니프로 강|드네프르 강]] 하류 지역이 이들의 노예 사냥으로 인해 초토화되어 말 그대로 공백 지역이 되는 바람에 일부 [[농노]]들이 영지를 탈출하여 이 공백 지역으로 들어오고 노예 사냥을 하는 크림 타타르에 대항할만한 자체적인 무력을 갖추면서 [[카자크]]가 성장하고, 이중 자포리자 코자키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굳이 기독교 국가만 약탈한 것이 아닌 무슬림 [[체르케스인]]들도 자주 노예로 납치하였는데 이는 체르케스인 노예들이 군인 노예 혹은 하렘의 첩실로 비싼 값에 거래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슬람 율법에 의하면 무슬림이 다른 무슬림을 노예로 삼는 것은 금지된 일이었지만 납치한 노예를 '''이자'''로 지불하던 관습과 마찬가지로 크림 타타르 사회 내에서 용인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슬픔에 잠겼네, 어디에도 살 곳이 없어서 >유목민 군대는 작은 아이를 말발굽으로 짓밟고 >아이고, 아이들은 짓밟고 어른들은 끌고 갔네 >손을 뒤로 돌려 묶고 칸에게로 몰고 갔네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주요 피해국이었던 러시아 역시 주기적으로 쳐들어오는 크림 타타르의 노예 사냥에 돌아버릴 지경이었는데 1574년에는 수도인 [[모스크바]]가 털리고 10만 명의 주민들이 노예로 잡혀가는 사태도 벌어졌다. 러시아에게 있어서 크림 칸국은 반드시 멸망시켜야 할 '''철천지 원수'''였지만 뒤를 봐주고 있는 오스만 때문에 이만 뿌득뿌득 갈고 있었는데 18세기경부터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크림 칸국의 종주국인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둘 사이의 국력이 역전되기 시작한다. 크림반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우크라이나 초원부터 병탄해야 했기에, 당시 러시아에 적대적이었던 자포리자 코자키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막고자 단 한 번 크림 타타르와 연합하기도 했다. 러시아에게는 그동안 크림 타타르에게 당한 것에 대한 복수를 할 겸 [[흑해]]의 [[부동항]]을 얻고 [[지중해]]로 진출하기 위해 1768년 크림 칸국과 오스만 제국을 공격했고 여기서 승리한 러시아는 1774년 크림 칸국과 오스만 제국과의 봉신관계를 단절시키고 1783년 전적으로 크림 칸국을 합병시켰다. 이때 자포리자 코자키가 러시아 진영으로 크림반도 공격을 주도하면서 수백 년에 걸친 이들과의 싸움은 코자키의 판정승으로 끝난다. 크림 칸국이 [[러시아 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후 숙적의 앞잡이이자 수 세기 동안 자국민을 사냥해 노예로 팔아치운 철천지 원수인 크림 타타르는 러시아 정부에 의해 엄청난 탄압을 받으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수많은 크림 타타르인들이 러시아의 탄압을 피해 오스만으로 피난갔고 러시아는 이들이 떠난 빈자리에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을 정착시켜 1783년 러시아의 크림 합병 직후 98%[* 나머지 2%는 노예 무역에 참여하던 외국인 혹은 크림 칸국의 딤미로 살던 [[우룸인]]이나 [[카라임]], 크림차크 유대인 등등]였던 크림 반도의 크림 타타르인 비율이 100여 년 후인 1897년에는 34%까지 폭락했다. 크림 타타르의 친척뻘인 볼가 타타르가 러시아 질서 아래에서 나름대로 대우[* 물론 볼가 타타르인들도 항상 좋은 대우만 받은 것은 아니었는데, 1921~22년도 당시 볼셰비키가 타타르스탄 일대의 식량 공급을 먼저 끊어서 수십만여 명이 기아로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볼가 타타르인들이 러시아에서 좋은 대우를 받은 이유는 크림 타타르인들이 비방하듯 이들이 얍삽하게 러시아에 복종해서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이슬람 국가와의 무역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루스 차르국, 러시아 제국의 세수를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받으며 산 거에 대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합병 이후인 1784년부터 1790년까지 전체 크림 타타르인 백만 명 중에 약 30만 명이 옛 크림 칸국의 영역을 떠나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산된다.[* Ismail Audingun & Aysegul Audingun, ''Crimean Tatars Return Home'':Identity and Cutural Revival, (Jounal of Ethinic and Migration Studies, 2007) pp115.] 또 다른 견해에 따르면 합병 이후부터 소련 건국까지 1783-1922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러시아화 정책과 탄압으로 180만에 달하는 크림 타타르인들이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근현대의 오스만 제국은 물론 현대 튀르키예 공화국에 상당한 수의 크림 타타르인 난민 출신과 그 후손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튀르키예 당국에서 인구조사 시에 크림 타타르인을 따로 통계내지 않으나,[* 한동안 튀르키예 공화국에서는 크림 타타르어를 소수민족의 고유 언어가 아닌 튀르키예어의 사투리로 여기던 편이었고 크림 타타르어를 사용하는 인구를 따로 소수자로 분류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괜히 크림 타타르 민족주의를 부추겨 봤자 소련하고 갈등만 일어날 뿐이고...] 현 튀르키예 공화국 내에서 살아가는 크림 타타르계를 최대 '''600만''' 가량까지 보기도 한다. [[https://iccrimea.org/scholarly/jankowski.html|Crimean Tatars and Noghais in Turkey]] 링크된 기사에서도 크림 타타르인 인구가 400~600만여 명에 달할 것이라는 통계가 과장이라는 지적이 소개되어 있다. 즉 튀르키예 내 크림 타타르인들이 600만여 명이다 주장은 튀르키예 내에서 백년 넘게 계속 뿌리를 내리고 살았으니 혼혈을 포함한 그 후손이 600만여 명 정도 되지 않을까 하는 추정치일 뿐이지 정확한 통계는 아니다. 원래 민족주의 계에서는 발언권 문제로 인구를 최대치로 추산해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파일:34DC66A2-D519-4A58-903F-CF78874E8FDE.jpg|width=33%]] [[파일:8338C9DE-A684-4CDD-9FFE-AE7213B9B53F.jpg|width=66%]]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Young_Muslim_Woman_at_May_18_Commemoration_of_Crimean_Tatar_Deportations-Genocide_-_Maidan_Square_-_Kiev_-_Ukraine_%2826496547473%29.jpg|동유럽에서 무자비한 노예 납치 및 약탈을 일삼았던 크림 타타르인들의 후손들은 통혼 등의 이유로 현재는 우크라이나인들과 외모 차이가 별로 없는 편이다.]] 크림 타타르 가운데 슬라브계 외양을 가진 사람도 흔하지만 우크라이나인 사이에서도 튀르크계 [[유라시안]] 외양을 가진 사람들도 결코 적지는 않다.[* 코사크들이 크림 타타르족들을 포로로 잡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개는 노예로 붙잡혔다 돌아온 우크라이나인 부녀자들이 크림 타타르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인들은 크림반도와 함께 이들 역시 우크라이나인이라 여기고는 있지만 과거 [[크림 칸국]]이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체르케스인]]들을 약탈한 과거가 있기에 이들이 여러모로 유명해질수록 과거사 문제가 크든 작든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체성이 본래 이들과 싸우느라 생긴 것이라서 2014년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의 상당수는 크림 타타르인은 신뢰할 수 없는 불온분자, 이방인으로 여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